오늘 글은 평소와 다른 형식입니다.
사례 분석도 아니고, 가이드도 아닌 — 짧은 단편입니다.
한 의뢰인의 회생 사건 도입부를 소설처럼 적어봤습니다.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했지만 묘사·대사는 재구성.
가끔은 정보 정리보다 — 한 사람의 풍경을 그대로 그려보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어서.
주인공은 38세 남자, 이름은 — 안 적기로 합니다.
대구 범어동의 작은 원룸에 살고, 직장은 수성구 인근 중소기업.
월급 280만 원, 신용대출과 카드 한도까지 합쳐 7,800만 원 채무.
연체 4개월차, 그리고 최근에 받은 — 한 장의 국세 체납 고지서.
그 고지서가 이 단편의 시작입니다.
하나. 우편함
그는 화요일 오후 7시 30분쯤 집에 도착했다.
원룸 1층 우편함에 흰 봉투가 한 장 꽂혀 있었다.
세무서 발신.
체납 통보. 320만 원.
그는 봉투를 열지 않고 그대로 손에 쥔 채 4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며칠째 점검 중이었다.
방에 들어가서 봉투를 식탁(이라기엔 작은 사이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 외투도 벗지 않고 5분쯤 그대로 서 있었다.
시계가 7시 35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제서야 외투를 벗고, 봉투를 들어 봉인을 뜯었다.
'2026년 종합소득세 체납. 납부기한 경과. 압류 절차 진행 예정.'
한 줄을 두 번 읽었다.
둘. 휴대폰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3개월 전부터 무음으로 두고 살고 있다. 추심 전화가 매일 8건 정도 오기 때문에.
잠금화면에 알림 12개. 그중 9개가 카드사·저축은행. 2개가 모친 부재중. 1개가 회사 단체톡.
그는 알림을 다 지우고, 검색창을 열었다.
'대구 회생 법무사'
검색 결과 1페이지에 광고 4개, 후기 글 2개, 그리고 블로그 한 편.
블로그 글 제목 — '회생 신청을 망설이는 너에게 — 형이 보내는 편지.'
이상하게 그 제목이 눈에 박혔다.
그는 그 글을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휴대폰을 식탁에 엎어두고, 다시 5분쯤 그대로 앉아 있었다.
셋. 첫 전화
밤 11시 22분, 그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편지에 적힌 문구가 머릿속에 한 줄로 남아 있었다 — '결정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다만 — 한 번이라도 가야 결정할 수 있어.'
그는 사무소 번호를 저장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두 번 화면을 켰다 껐다.
시계가 11시 25분.
"내일 9시에 전화하자" 라고 작게 말했다, 본인에게.
다음 날 오전 9시 4분, 그는 회사 화장실에서 사무소에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상담 가능한가요" 가 첫 말.
"네, 오늘 오후 가능하세요?" 가 답.
"네, 6시쯤 가도 될까요" 가 그의 답.
"6시 30분에 잡아드릴게요."
통화 시간 1분 12초. 그가 가장 어려웠던 1분 12초였다.
넷. 그날 저녁의 길
오후 6시 20분, 그는 수성구 범어동의 한 빌딩 앞에 도착했다.
2층 사무소.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우편함에서 가져온 그 봉투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320만 원 체납.'
이 한 장이 — 본인을 여기까지 데려온 셈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는 처음 만난 법무사에게 — "체납이 좀 있어서요" 가 첫 마디였다.
법무사가 "괜찮습니다. 천천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로 답했다.
그가 가방에서 꺼낸 게 — 신용카드 5장, 대출 명세서 3장, 그리고 어제 받은 그 세금 고지서 한 장.
"이거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상담은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섯. 사무소를 나오는 밤
밤 8시 35분, 그는 사무소를 나왔다.
손에 — 견적서 한 장과 다음 일정 메모.
빌딩 1층에서 잠시 멈춰 서서 — 처음으로 한 번, 본인이 한 결정에 대해 잠깐 안도했다.
"결정한 게 아니라 — 가본 거예요" 라고 본인에게 작게 말했다.
법무사가 "1주일 정도 생각해보시고 결정해도 됩니다" 라고 안내했기에.
그는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 우편함에서 가져온 세금 고지서를 가방에서 꺼내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어제와 오늘, 같은 종이.
다만 어제는 — 손에 쥐고 4층 계단을 올라갔던 종이였고, 오늘은 — 사무소에 같이 들고 가서 풀어본 종이였다.
다른 무게.
그가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무거운 게 아니라, 조금 가벼운 한숨이었다.
단편의 끝, 사건의 시작
이 단편의 끝이 이 사건의 시작입니다.
주인공은 일주일 고민 후 회생 신청 결정.
신청 후 4개월 만에 개시결정, 9개월 후 인가.
체납 320만 원은 우선채권으로 36개월 분할 변제 + 일반 채무는 약 75% 면책.
오늘 글에서 그가 가장 무거웠던 순간은 — 우편함에서 봉투를 꺼낸 시점이 아니라, 휴대폰을 손에 쥐고도 통화 버튼을 못 누르던 그 11시 22분.
회생 망설이시는 분 중에 — 본인이 지금 그 11시 22분에 계실 수도 있습니다.
손에 쥐고도 누르지 못하는 그 시간.
그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 1분 12초의 통화 한 번입니다.
주인공처럼, 화장실에서라도, 짧게라도, 한 번 걸어보시면 다음 단계가 자연스럽게 옵니다.
이 단편이 본인의 11시 22분에 작은 안내가 되길.
